고려시대 천안에 처음 심어… ‘천안호두과자’ 명물
지난 호에서 말씀드린 가래나무가 중부 이북에서 자란다면 남부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바로 호두나무입니다.
보기 드물게 세계인이 다 반기는 나무가 바로 호두나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먹고 술안주로도 아주 즐깁니다.
서양이 원조인 아이스크림에도 콕콕 박아 고소한 맛을 내게 하고 샐러드에도 함께 넣어 버무립니다. 또 씨앗 한두 개를 손안에 잡고 문질러 건강을 지키는 데도 쓰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호두나무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려시댑니다. 충렬왕 16년(1290) 유청신이라는 사람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씨앗과 어린 나무를 가져왔습니다.
처음 심은 데는 지금 호두과자로 이름높은 천안입니다. 광덕면 대덕리에 심었다는데, 여기에는 광덕사가 있고 이 절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400살 묵은 호두나무가 심겨 있어 유래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보면 호두나무는 자생지가 중국입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삼국시대 당나라를 통해서라고 보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원산지는 지금 이란이 있는 중앙아시아 어디쯤이랍니다.
말하자면 중국 장건이라는 사람이 들여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장건은 한나라 무제 때 북쪽 흉노족을 막으려고 서쪽에 있는 대월지에 갔습니다. 하지만 동맹에 실패하고 중앙아시아에 있던 오손과 동맹을 맺으려고 여러 차례 여행을 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호두나무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건네졌고 이른바 비단길(silk road)을 통해 왕래가 잦아지면서 호두나무도 더 많이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티베트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서도 동진(東進)을 했습니다.
호두나무는 원래 따뜻한 날씨에서 잘 자라는데, 히말라야를 넘으면서 추운 기후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나무는 도태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의 나가노까지 건너간 게 400년 전입니다.
호두나무는 당연히 유럽으로도 갔습니다. 호두나무의 학명은 페르시아 호두(Persian Walnut)와 동양 호두(Orient Walnut)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동양 호두는 호두나무가 서진(西進)을 하면서 얻은 이름으로 짐작이 됩니다.
로마시대에는 호두열매를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결혼을 하면 호두를 던져 축하해 줬던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폐백을 할 때 대추·밤을 던지듯이 말입니다.
호두는, 동진 과정에서 히말라야를 넘으면서 강한 유전자만 살아남았듯이,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가로지르면서도 튼튼한 놈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둘이 지구를 반 바퀴씩 돈 다음 일본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결혼을 했더니 아주 뛰어난 놈들이 나왔답니다. 2000여 년 동안 지구를 돌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우성(優性)끼리 만나 우성을 생산한 것입니다.
호두나무가 인기가 좋은 까닭은 열매 자체가 딱딱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래나무와 마찬가지로 가구재나 목재로 쓰기도 한답니다.
호두나무는 잎자루에 달린 작은잎이 5~7장밖에 안돼 7~17장이 나는 가래나무와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또 호두나무는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서 거칠거칠한 가래나무와 달리 매끈한 편이라는 것도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납니다.
/최송현(37·밀양대학교 조경학과 조교수·학교숲 가꾸기운동 경남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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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적을 때는 ‘자장면’으로 적도록 강요당합니다. 신문·방송이나 교과서에서는 ‘자장면’이라 하지만 현실에서는 ‘짜장면’을 주문해 먹는다는 말입니다. 명실상부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 같은 일이 나무 이름을 둘러싸고도 일어납니다. 호두나무가 보기가 되겠습니다. 말뿌리를 따라가면 원래 이름은 호도(胡桃)나무였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복숭아랑 비슷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쯤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말이 되는 과정에서 이화(異化)작용으로 호두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식물도감 같은 데를 뒤적여보면 ‘호도나무’라고 적은 다음 괄호 안에다가 ‘호두나무’라고 해 놓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호도’에 매달리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굳이 외래어를 밝혀써야 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우리말이 됐는데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보기로는 아까시나무가 더합니다. 학계에서는 ‘아까시’라고 쓰기로 했지만 표준말은 여전히 ‘아카시아’입니다.
이른바 아카시아나무의 학명은 Robina Pseudo-acacia로 돼 있습니다. ‘pseudo(프쉐도)’는 우리말로 옮기면 ‘비슷하지만 다르다’입니다. 이를테면 ‘사이비(似而非)’라는 뜻으로 ‘아카시아’는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표준말의 저항은 완강합니다. 그러나 호두나무가 이제는 표준말로 자리잡았듯, ‘아까시나무’, ‘호두나무’, ‘짜장면’이라고 애써 이르는 사람들은 더욱 완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