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매화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花一生寒不賣香)는 말이 있습니다.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를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화는 중국의 나라꽃입니다. 원래는 모란(목단)이 중국꽃이었으나 1929년 매화를 국화로 정했습니다.
매화는 추운 겨울의 끝에서 한 가지만 꽃을 피워도 봄을 알리기에 족하다 해서 봄의 전령사이기도 합니다. 늦겨울이나 초봄에 꽃을 피우지만 때로는 눈 속에서도 꽃피기도 해 설중매(雪中梅)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정에 몸담지 않고 가난을 두려워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여길만한 풍경입니다.
우리 선비들의 칭송도 많이 받았습니다. 강희안은 자신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 매화를 1품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사군자인 ‘매란국죽’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며 회춘(回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조선 선조 때 임제(林悌, 1549~87)는 <화사>(花史)라는 한문소설을 썼는데, 꽃과 나무를 중국 역사에 빗대어 당시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대와 솔이 모여 매화나무를 왕으로 받들어 도(陶)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꽃의 맏이라는 뜻으로 화형(火兄)이라고도 합니다.
매화의 고향은 중국입니다. 물론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자라는데 우리나라는 중부지역 아래쪽에서 기를 수 있답니다. 이렇듯 동양을 대표하는 세 나라에서 뿌리내리고 있으니 동양의 품격을 물씬 풍기는 나무라 하겠습니다.
매화나무의 매력은 모양과 향기에 있습니다. 볼품 없는 칙칙한 가지에서 향내를 풍기는 화려한 꽃을, 그것도 추운 늦겨울에 피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하여 선비들이 시와 그림에 종종 담았고 매화꽃가지(一枝梅)를 꺾어 방에 두고 향기의 은은함도 음미했다고 합니다.
설중매…선비정신의 표상 햇볕·기름진 땅 좋아해
매실, 약용와 술로도 으뜸
이제 꽃으로 가보겠습니다. 꽃의 학문적 정의는 암술과 수술, 꽃잎·꽃받침을 모두 갖춘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꽃이라고 생각하는 소나무·은행나무·참나무류의 꽃들은 이를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해 엄밀히 꽃이라 볼 수 없다고도 얘기합니다.
그런데 매화꽃을 한 번 보십시오. 참 잘 갖춘 꽃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 것입니다. 먼저 한가운데 암술 하나가 솟아 있고 둘레에 여러 수술이 있습니다. 빙 둘러서 5장 꽃잎이 돋았고 아래로 꽃받침이 있어서 완벽하답니다.
매화나무도 꽃을 많이 피우는 편에 듭니다. 그러나 벚나무처럼 풍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벚나무는 가지치기를 하면 곤란하지만 매화는 어느 만큼 가지를 쳐도 좋습니다. 매화나무는 축축한 데를 싫어하고 햇볕이 많이 들고 기름진 땅을 좋아합니다.
열매인 매실도 참으로 쓸모가 많습니다. 요즘은 약용은 물론 식용품으로도 개발돼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매실 진액은 예로부터 배앓이에 좋다고 해서 가정 상비약으로 갖출 정도였고 덜 익은 열매를 약한 불에 쬔 다음 햇빛에 말린 오매(烏梅)는 설사·이질·기침 등에 약효를 냅니다. 또 술꾼들은 열매를 소주에 담가 만든 매실주를 아주 즐깁니다.
사람들은 매화의 기품을 따르기 위해 매화를 가까이 두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近墨者黑)는 말이 있는데, 요즘 으뜸 주제는 단연코 부정부패 척결이 아닌가 합니다. 며칠 전에는 경남도청 공무원이 버스업체와 짜고 운행 노선과 횟수를 늘려서 보상금을 많이 타내준 대가로 1억원을 받아챙긴 일도 터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조상들이 매화나무를 통해 스스로 삼가고 가다듬었듯이 청렴이 필요한 관공서 같은 데에는 매화나무 몇 그루쯤 심어서 꽃과 가지를 볼 때마다 지조와 절개를 새기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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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문학 뜻하는 정당매 & 남명 조식이 심은 남명매
매화나무 가운데는 이름이 있거나 나이가 알려진 나무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는 옛날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을 갖고 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몰락한 선비들이 처음 뜻을 버리지 말자고 심기도 하고, 귀양을 살면서 그래도 ‘임 향한 일편단심’을 잊지 않았다고 시위하려고 심기도 했을 것입니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단속사터에 가면 630년 넘게 나이를 먹은 정당매라는 매화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높이가 5m 밑둥치 둘레가 2m 남짓한 이 나무는 비각을 하나 거느릴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정당매는 고려 공양왕 때 정당문학에다 대사헌까지 겸했던 통정대부 강회백이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어릴 적 이 절간에 와서 공부할 즈음에 들창 앞 뜨락에 심어놓고 오며가며 쳐다봤을 것입니다.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는 남명 조식 선생이 세우고 후학을 길렀다는 산천재가 있습니다. 61살 때인 1562년에 만든 이 재실 앞뜰에는 남명매가 한 그루 있습니다.
조식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이 매화나무는, 산천재가 지어진 때부터 역산해 보면 적어도 440살은 넘었다고 봐야겠지요.
선생은 만년에 ‘설매’(雪梅)라는, 쓸쓸하면서도 자못 씩씩한 시를 남겨서 후손들로 하여금 선생의 심은 뜻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홀로 지내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까지 내렸구나/ 선비집은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했는데/ 매화가 피어나니 다시 맑은 기운 솟아나네.”